한달살기

알바니아의 피라미드 (대국민 폰지 금융 사기와 시민전쟁)

month-living 2024. 8. 2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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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의 한달살기를 마치고 발칸반도의 이웃나라인 알바니아로 넘어왔다. 알바니아 또한 보스니아와 마찬가지로 한달살기를 시작하기 전에는 들어본 적이 거의 없는 생소한 국가 중의 하나였다.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1992년도에 해체가 될때까지 유고슬라비아라는 한 나라의 일부였기 때문에 비슷한 점도, 그러나 다른 점도 많이 존재했다.

 

보스니아를 떠나서 처음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우와 도시다!" 였다ㅋㅋ 보스니아에서 한달살기를 했던 사라예보와 모스타르에 비교하면 도시다운 도시처럼 느껴졌던 티라나! 건물 외벽에 총알 자국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보스니아와는 다르게 현대적인 고층건물들도 많고, 훨씬 더 모던한 레스토랑, 카페, 바, 상점가들이 시내 곳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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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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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현대적 건물들이 공존하는 티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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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나의 현대적인 레스토랑과 카페들

 

알바니아의 가혹한 공산주의 독재 정치와 사회적 변환기

알바니아는 1944부터 1985년까지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독재정치 아래 가혹한 공산주의 체제에 오랫동안 갇혀있었다. 엔베르 호자는 입헌군주제를 제외하면 유럽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집권한 독재자로 기록되어 있다.

 

이 기간동안 알바니아는 국경을 닫고 외부 세계와의 교류를 거의 단절한 채 내부 통제에 집중했다. 외부 국가들로부터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알바니아 구석구석 바다, 산, 와인밭, 마을을 가리지 않고 무려 750,000개가 넘는 지하 벙커를 세웠으며, 정치범들을 위한 수용소와 감옥들을 전국적으로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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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전국 방방곡곡에 설치된 벙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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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수도 티라나의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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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바니아의 공산주의 체제 박물관과 예술 전시관으로 변형된 티라나의 벙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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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박물관/ 예술 전시관인 티라나 벙커의 지하 내부

 

혹독했던 알바니아의 공산주의가 끝나고 자본주의로 전환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에서 제대로 된 은행 시스템과 규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국민들 대부분이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큰 성장통을 겪으며 그 전환이 이루어졌다.

 

알바니아의 대국민 피라미드 금융 사기

1990년대에 알바니아 국민들의 약 2/3가 폰지 피라미드 금융 사기에 돈을 투자했다. 당시 알바니아 국민들이 피라미드 기업에 투자했던 자금은 무려 약 1.5조 (1.2 billion USD)로, 이는 그 당시 알바니아 GDP 의 거의 절반이나 차지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추천받아서 너도 나도 투자하기 위해 집과 전재산까지 팔아서 자금을 마련했던 알바니아 사람들. 이들이 그 당시 투자했던 기업들은 실제로 알바니아 전역에서 슈퍼마켓, 호텔 등의 체인을 운영하는 등의  합법적인 상업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이 기업들의 광고 또한 티비를 통해 전국으로 중계가 되었기 때문에 알바니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합법적인 기업에 자신들의 돈을 투자하고 있다고 믿었다. 대부분 가족과 지인들의 추천으로 시작했고, 초기에는 모든 사람들이 투자금을 다 꼬박꼬박 받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이 기업들이 피라미드 운영을 하고 있는 사기 기업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피라미드 기업들은 더이상 새로운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들에게 이자금을 돌려줄 수 없게 되었고, 이 모든 것들이 거대한 폰지 피라미드 사기였다는 것이 알려졌을 때, 알바니아 사람들의 충격과 분노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제 막 힘들었던 공산주의 체제에서 벗어나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 절실한 마음으로 영끌해서 투자한 알바니아 국민들. 피라미드 기업들은 이러한 그 당시 알바니아 국민들의 절박함을 이용하고 있었다.

 

1997년, 이 절박한 사람들이 폰지 피라미드 사기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충격과 분노는 엄청났고, 알바니아 국민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와 폭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무력으로 대응하며, 이는 시민전쟁으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 시민전쟁의 과정에서 2,000명 정도의 알바니아 국민들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말도 안되는 이자를 돌려준다는 피라미드 기업들의 달콤한 유혹을 너무나도 믿고 싶었던, 그토록 절박했던 알바니아 사람들이 피라미드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화가 나고 속이 터졌을지 상상하기 어려웠다.

 

현재진행형 발전 중인, 아름다운 알바니아

1997년 부터 30여 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알바니아의 수도인 티라나는 괄목할만한 경제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으며, 어엿한 현대적 도시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그리스 바로 위쪽에 위치해서 그리스만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알바니아인 만큼, 이미 유럽에서는 엄청난 관광객들이 매년 알바니아를 방문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관광지로써의 인기가 매년 상승하고 있다.

 

따끈따끈한 최신 뉴스에 의하면, 트럼프의 딸인 이방카 트럼프와 그녀의 남편이자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역시 알바니아에 방문한 뒤 아드리아해와 이오니아해와 접해있는 알바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에 매혹되어, 냉전동안 군사 기지로 사용되었던 알바니아 블로레 인근 섬인 사잔섬(Sazan Island)을 초호화 럭셔리 리조트로 개발하는 계획을 진행 중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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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드리아해, 이오니아해와 접해있는 알바니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알바니아의 피라미드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도심 한복판에는 피라미드 건축물이 있다. 나는 처음에 알바니아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났던 아픈 과거인 피라미드 사기를 기억하기 위해 만든 건가? 라고 생각했는데, 피라미드 건축물은 그 사건이 일어나기 10년 정도 이전인 1988년도에 공산주의 독재자였던 엔베르 호자 박물관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범국민 피라미드 금융 사기를 겪었던 알바니아의 수도 한복판에 세워져 있는 피라미드 -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조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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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의 피라미드 건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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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라나 도심 한복판에 위치해 있는 피라미드 건축물

 

피라미드의 아픈 과거를 극복하고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알바니아! 아직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훨씬 저렴하고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국가이지만 이제 곧 주변의 다른 유럽 국가들에 못지 않게 더 비싸고 관광객들이 몰릴 예정이다. 그전에 아직은 숨겨진 유럽의 보석 같은 발칸반도를 충분히 즐기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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